2019년,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기억

2021. 6. 6. 23:52카테고리 없음

정확이 어느 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았던 것이 확실히 기억난다.

 

소년탐정 김전일(자료출처-카카오 티비)

 

평소 명탐정 코난만 보다가 나이가 비슷한 육촌 관계인 고모가 김전일을 틀어서 처음으로 김전일을 보게된 것이었다.

김전일을 보고 많은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치밀하고 예술적인 범인의 트릭은 어린 나의 마음을 빼앗아가며 나를 사로잡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범인의 동기였다. 범인은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김전일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범인은 너무나도 불쌍했다.

범인은 원래 피해자를 매우 믿고 의지했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범인을 크게 배신하고 범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 채, 복수심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그 에피소드의 내용이었다.

 

(자료출처-투니버스)

 

시간이 꽤나 흐르고 김전일을 계속 보았지만, 기가막힌 밀실 트릭만큼이나 범인의 동기가 충격적인 것을 매번 느꼈다.

자신의 부모를 죽였지만 법이 처벌해주지 못했거나 자신의 애인을 죽였지만 경찰의 오인으로 자살로 판명이 나서 범인들을 죽이는 등, 안타까운 범인들의 동기들이 만화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추리만화 김전일을 보면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이유가 있든 살인은 잘못된 선택이다"

그 어떤 이유가 있어도, 어떤 결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범인의 그 선택이 필연적이었다 하더라도 결코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살인은 누군가의 인생을 그 너머로 한 명에서 그치지 않는 그 주변인의 인생까지도 끝내는 잔혹한 행위임을 우리는 알고있다. 또한 그 결과를 벗어나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결코 옳은 과정일 수 없다.

 

(자료출처-지마켓)

 

그러나 누군가는 마땅한 동기도 존재하지 않음에도, 서스럼없이 살인을 저지르곤 한다. 아무런 양심의 죄책도 없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존재들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만화와 다른 동기도 있지만 현실과 만화의 가장 큰 차이는 김전일의 유무였다.

 

열심히 수사를 진행했던 형사를 찾기는 드물었고 고문하고 억울한 사람을 만들며 많은 용의자의 자살과 막지 못한 연쇄적인 피해자들을 만들어낸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가족들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살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했던 한국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자 나에게도 큰 기억을 남겼던 사건.오늘 다룰 주제는 33년 동안이나 미해결로 남았던 화성 연쇄살인과 그 사건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화성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자료출처-위키백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뜨거운 열기가 공기를 맴도는 계절인 여름이었다.벌써 7월을 넘겨 학교는 방학을 막 시작한 상태였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여름방학이 오면 우리 가족은 항상 널직한 거실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거실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삭히곤 했다.

집에 있는 책도 좋지만 시간도 많기에 아빠와 형제들과 큰 도서관으로 가서 거실에서 볼 책들을 빌려오기로 하였었다.

 

막 범죄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생기던 시기여서 나는 관련 책장에서 책을 살피게 되었고, 표창원 교수의 책인 '한국의 연쇄살인을 고르게 되었다.

 

(자료출처-알라딘)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책을 읽던 나는 너무나도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용어나 문장이 아닌, 그 책 속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처벌을 받아야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잡지 못하고 공소시효 때문에 만약 잡는다고 하더라도 처벌을 하지 못하는 사건이 많다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건 가운데 가장 인상깊은 사건이 바로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속칭 화성 연쇄살인사건, 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이었다. 1986부터 시작해 약 5년 동안 이어진 끔찍한 살인행각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그 사건은 희망이 없어보였다.

“누군가가 포기하기 때문에 미제사건이 만들어지고 모두가 포기하는 순간 사건은 영원히 미궁으로 빠진다.” 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라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이 사건이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출처-시사저널)

 

하루는 신문 만들기 모둠활동이 있었다. 선생님은 원하는 친구들과 꼭 하고 싶은 주제를 골라서 조사하고 신문으로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잊혀만 가는 미제사건들’을 주제로 삼았다. 그 말에 바로 나와 친하던 친구 두 명이 같이 하자고 하였다.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서 잊혀가고 해결의지가 사라져가는 미제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싶었다. 우리는 외국사례로 미제사건인 조디악 킬러와 당시 국내에서 최악의 미제사건이며 안타까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두 아이는 조디악과 그 암호를 조사하고 분석하는데 힘을 쓰고 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개하고 분석하기로 했다. 나는 원래도 그 사건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그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2권의 책을 읽고 프로파일링과 범죄 심리를 다루는 책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유사한 수법에 범죄자들을 찾아보고 그 사람들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스케치북에 범행노선과 특징들을 정리하며 고심했고 어느 정도 발표할 정도로 분석을 마쳤다.

그리고 대망의 발표시간이 되었다. 두 아이는 멋들어지게 발표를 끝냈다. 

“분명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범인을 끔찍하게 여기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해본 그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설명했다.

“범인은 첫 번째 범죄를 저지를 때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즉 대략 20대 초반일 것입니다.

범행을 보면 아직 무모하고 계획적이지 않습니다. 그 전에 살인 전과는 없을 것입니다. 범인은 즉 1987년부터 1990년대까지 10대 후반에서 30살 정도 였을겁니다. 범인은 처음에는 노인 등 약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일종의 연습을 해 본것으로 판단이 가능합니다.

범인은 처음에는 다소 어이가 없는 증거를 남겼지만 갈수록 계획적으로 변했습니다. 범죄의 양상이 갈수록 체계적으로 진화한 것을 살펴봅시다. 초반 범행들이 비체계적, 비계획적이고 충동적인 반면 후반 사건들은 흉기 등을 지참하거나 계획적인 것으로 보아 아마 범인은 초반에는 이동반경이 넓지 않아 본인의 주거지 근처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가면 갈수록 자신의 집과 먼 곳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겁니다. 즉 처음 두 범죄가 벌어졌던 화성시 태안읍에 거주합니다.”

아이들은 그럼 경찰이 못 잡았겠냐? 등 비아냥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일정한 직업은 없을 가능성이 높으며 직업이 있다면 사무직이 아닌 공장, 운전직 등에서 일할 것입니다. 사건 초기,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부모님 정도이나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정신장애적인 특징은 없지만 정신병질적 특징이 보이며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특징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하지요.

또 어릴 때 누군가의 지나친 통제를 받는 등 어린 시절도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연쇄살인자의 특징이죠.”

그렇게 나는 발표를 끝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신문은 재활용 통에 버려졌겠지만, 그 기억은 내 머리속 깊은 곳에 계속해서 자리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릭스쿨로 오게되었으며 이후로도 다양한 일들이 있으며 이런 기억들이 서서히 사라지던 시기였다. 

 그런 시점에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검거되었다"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나는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신문으로 확인해보고 30년이 넘도록 수사망을 피하던 범인이 잡힌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도저히 잡힐 수 없을 것만 같던 범인이 검거되었고 이제야 조금이나마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풀리게 된 것이었다.

 이춘재는 처음 범죄를 저지를 당시 23세였다.  또 화성시 태안읍의 거주했다고 하며 또 레미콘 등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또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졌다는 이춘재. 30년 동안에 추격전 끝에 결국 그는 체포되었다.

 

화성 사건을 다룬 표창원의 저서에서 이런 말이 나왔었다. "정의는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온다"
이 말이 항상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을 믿고싶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정의라는 것이 당연해지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그런 바람직한 세상.악인은 마땅한 처벌을 받으며 피해자들을 따뜻하게 원조하는 사회.그런 사회가 찾아오길 다시 한 번 소망한다.